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에서 멀지 않은 푸나라는 도시에 세계 최대 백신회사인 세럼인스티튜트(Serum Institute of India·SII)가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인도 중앙약품기준통제기구(CDSCO)는 세럼이 코로나19 백신의 2단계, 3단계 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인디아TV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세럼은 푸나와 뭄바이 등 인도 내 몇몇 도시에서 4000~5000명을 대상으로 이달 중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세럼이 시험 중인 것은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팀과 영국-스웨덴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함께 만든 백신이다. 옥스포드 연구팀은 최근 영국 등지에서 실시된 임상시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미국 기업 모더나 등과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대량생산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백신을 놓고 벌써부터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각국 정부와 10억달러 어치의 백신 생산을 미리 계약해놨다. 또 세계백신연맹(GAVI) 등 국제 보건의료기구와 협력해 백신 10억회분을 저개발국에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옥스포드 백신의 효과가 입증돼 아스트라제네카가 특허권을 갖게 되면 세럼도 10억회 접종분을 생산하기로 했다.
세럼은 아스트라제네카뿐 아니라 노바박스, 코다제닉스 등 미국 백신 개발사들과도 협정을 맺었다. 코다제닉스 백신은 아직 임상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노바박스의 후보작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시험단계를 한두달이면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세럼은 외국 회사들이 개발한 백신을 생산하는 것뿐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아다르 푸나왈라(Adar Poonawalla) 최고경영자(CEO)는 2일 뭄바이미러 인터뷰에서 “내년 말까지는 독자적인 백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세럼은 말 사육자 출신인 시루스 푸나왈라가 1966년 창업했다. 경주용 말을 키우던 그는 백신 개발회사들에게 임상시험용으로 말을 팔다가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스스로 백신 생산에 뛰어들어 억만장자가 됐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재산이 118억달러에 이른다. 아들 아다르는 2011년부터 경영을 맡았고 네덜란드 제약회사 등을 인수해 사업을 키웠다.
세럼은 BCG백신 투버락, 소아마비 백신 폴리오박 등등 20여종의 백신을 165개국에 수출한다. 연간 생산하는 백신은 13억회 접종분에 이른다. 인도의 첨단기업들은 기술수준이 높은 연구진을 보유한 동시에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세럼도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유니세프나 미주보건기구(PAHO) 등과 계약해 저가 백신을 공급하면서 성장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세계 어린이의 절반이 세럼의 백신을 접종받는다.”
세럼은 이미 4월부터 코로나19 백신 양산체계를 만들었으며 옥스포드로부터 5월 초 바이러스를 전달받아 대량생산에 대비한 실험을 해왔다. 아직 개발이 끝나기도 전에 양산 준비에 들어간 것은 생산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세럼 측은 임상시험이 최종적으로 끝나는 시기를 11월로 보고 있으며, 곧바로 3억회 접종분을 공급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세럼은 이미 코로나19 백신 생산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4억5000만달러를 투입했다.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무엇보다 백신이 완성돼야 한다. 옥스퍼드 연구팀은 4월 실시된 첫 임상시험에서 투약자들에게 성공적으로 항체와 면역세포가 형성됐다고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하지만 시험대상이 1000여명이었고 그 중 절반에게만 접종을 했다. 연구팀은 영국과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약 5만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첫 임상 결과는 긍정적이었지만 대규모 시험에서 안전성이 확인돼야 하고, 또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입증돼야 한다. 반면 제조사 입장에선 코로나19 백신으로 수익성을 추구하기는 힘들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00년에 한 번 나올 보건 위기”라 표현한 팬데믹을 앞에 놓고 백신 값을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세럼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우려는 인도 상황이다. 코로나19 세계 감염자는 2일 현재 1800만명을 넘어섰다. 인도는 175만명으로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3번째로 많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백신 수출을 막아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푸나왈라 CEO는 최근 정부에 국내용과 수출용을 50대 50으로 나누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부가 명시적으로 이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인도 내 감염이 더 퍼지면 ‘백신 민족주의’에 힘이 실릴 것으로 뉴욕타임스는 내다봤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워프스피드(Warp Speed)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백신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럽연합(EU)도 31일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와 계약하는 등 여러 회사들을 상대로 물량 확보에 나섰다. 부자 나라들, 생산능력이 있는 나라들이 백신을 독차지하면 빈국들은 백신을 접종받을 기회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ugust 02, 2020 at 01:2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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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인도가 수출을 막으면? 세계최대 백신회사 '세룸'에 쏠린 시선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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