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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9, 2020

"과장님이 탕비실에서…신고하면 회사가 내 편 돼 줄까요?" - 프레시안

santalimadua.blogspot.com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화두였던 시절에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그 많은 사건들 중 똑같은 사건이 없고 각양각색의 내용이지만, 직장내성폭력 사건들 대게가 직장에 튼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부서의 상급자나 선배로부터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비중이 단연 높다.

"A은행 지점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어요. 2년 후에는 이직해야 하지만, 2년을 무사히 다니고 파견회사를 통해 이후에 비슷한 다른 회사로 잘 옮기려면 원만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게 필요해요. 그런데 옆팀 과장님이 탕비실 같은 데서 만나면 손가락으로 배나 옆구리를 찌르기도 하고, 회식 자리나 노래방 같은 데서는 친목을 빙자해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뺨에 뽀뽀를 하기도 했어요. 몸을 빼기도 하고 '왜 그러냐'고 말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어요. 입사 초기부터 '내가 너 뽑자고 했어'라고 얘기하기도 해서 부담도 됐구요. 늦었지만 신고하고 싶은데, 회사가 내 편을 들어줄까요?"

"B증권회사를 다니는 신입사원입니다. 거래처를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혼자 전담하는 업무가 애매했고 차장님과 거래처를 함께 방문하거나 접대하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하지만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가능한 부서의 선임들이 가자는 술자리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차장님이 술자리가 끝나면 데려다준다고 우겨서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이나 택시를 같이 타게 되는 일이 많아졌어요. 차 안에서, 집 앞에서 한 잔 더하자고 우겨서 응한 자리에서, 터치가 심해졌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모텔이었어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고 지냈는데 우울증이 왔어요. 그래서 사과를 요구했는데, '같이 좋아 썸 타고서 왜 그러냐'고 제게 되레 화를 내더라구요. 성폭력이 아닌 걸까요?"

"C물류회사 말단 직원입니다. 한동안 TF팀을 한 후 부서로 복귀했어요. 그때 같이 일했던 결혼한 직장 선배가 다른 TF팀을 꾸릴 거라며 제게도 같이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어요. 2년제를 졸업하고 입사해서 진급에서 불리한 입장이기도 하고, 그 TF팀 업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잘 보이고 싶었고, 그래서 저녁에 보자고 하면 응하기도 하며 친분이 생겼고, 그 부서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부서를 옮긴 직후부터 그 선배가 치근덕거리기 시작했어요. 사귀자면서 집 앞에 자꾸 찾아오고, 원하지 않는 스킨십을 시도하고, 화를 내면 사랑해서 제어가 안 된다며 사과하고, 만나주지 않으면 자해하겠다고 겁을 줬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하며 참았는데, 그게 1년이 돼가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각기 다른 직장의,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사건사고 이야기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각각의 사연이 그저 낯설기만 하지 않을 것이고, 각각의 사연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직급이나 연차, 연령, 고용 형태 등이 차이 나는 직장 안에서 정보와 힘의 불균형은 당연한 현상이다. 갓 입사하여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해서 주변에서 듣는 평가에 취약하거나, 직장에서 아직 튼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거나 갖지 못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진다. 특히 사회생활 자체의 경험이 부족할수록 내게 없는 경험으로 압도하는 상대에게 '나는 네 편'임을 어필하거나 사랑스러운 후배로 여겨질 만한 노력을 하게 된다.

"일 잘하고 사회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적자생존의 정글 안에서 당연한 선택이고 선임들을 향해 갖는 겸손과 존경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쁜 상대를 만나면 나쁘게 왜곡된다는 데 있다. 존경의 표현은 연심으로 오독 되고, 겸손하게 낮춘 자세는 만만함으로 오해된다.

일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을 뿐인데, 못된 상대에게 선의가 제멋대로 오독 되면서 뜻하지 않은 회사 외부에서 당하는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피해가 일어나면 더 당황하게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사과받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으면서 끝내려던 노력들이 다음 순번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원만하게, 조용히 해결하고 지내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즈음엔 외관상 보이는 가해자와의 관계나 사건의 성질이 잔뜩 꼬인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상황이 그쯤 되면 피해로 규명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치정에 의한 복수, 금전을 노린 계획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말에 의해 상처받고, 무고라고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 건 없어!"

이런 사건의 많은 피해자들과 상담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성폭력 등 피해가 발생한 다음에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치할 수 있었으면, 성폭력 피해를 안 입을 수 있었다면, 가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줄 만한 엄두를 덜 낼 만한 관계 매김을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도발해오는 것을 피해자가 100% 예방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피해는 가해자가 그런 사람인 탓이지 피해자가 그런 사람인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사회에 첫 발을 딛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을의 입장에서 나쁜 갑이 그 을을 경계하게 되면 그나마 예방이 된다. 나쁜 갑이 을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거나 나쁜 갑이 저지른 가해를 차단시키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친밀한 관계에 기반해서 의존하는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불편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노력 속에 어차피 채워질 것들이니, 상대와의 '좋은 관계'로 먼저 채우거나 더 채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좋은 관계라서 '그냥' 더 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서 '그런 건 없다'라고 단호하게 알려줄 언니들이 당장에 옆에 없을 수 있지만, 젊은 우리는 그걸 믿고 서로 그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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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10, 2020 at 07:3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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