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같은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용 컴퓨터로 음란 동영상을 보는 상사 ㄴ씨를 두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회사는 ㄴ씨에게 동영상을 삭제하고 ㄱ씨에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ㄴ씨는 회사 지시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회사에서 음란 동영상을 시청했다. 회사는 ㄴ씨에 대한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퇴사한 ㄱ씨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의 책임이 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행위자에게 지체 없이 징계 또는 그에 준하는 사후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ㄱ씨는 회사가 자신과 ㄴ씨를 분리시키는 등 피용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아 퇴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6개월간 일실수입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등을 계산해 총 3800여만원을 청구했다.
지난달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8단독 강민호 부장판사는 ㄱ씨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위자료는 400만원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 위반 행위와 재산적 손해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녀고용평등법이 규정하는 각종 의무를 방기한 사용자에게는 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문제는 위자료 액수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손해액을 산정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이지만 법원은 강간, 강제추행, 성희롱 등 피해 정도에 따라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위자료를 책정하는 편이다.
지난해 대법원 젠더법연구회가 2012~2018년 선고된 하급심 판결례를 분석한 결과,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위자료는 500만원 이하로 책정됐다. 강간 사건의 위자료는 최대 1억5000만원, 강제추행 사건의 위자료는 최대 4000만원이었다.
ㄱ씨는 ㄴ씨를 상대로 제기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는 7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받았다. 이는 법원이 성폭력 사건을 방치한 사용자보다 가해자에게 훨씬 더 높은 위자료를 책정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상향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야만 사용자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조치의 의무를 다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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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법 젠더법연구회
7년치 하급심 판결사례 분석
위자료 평균 ‘500만원 이하’
“액수 높여야 사측 예방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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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는 피해자의 손해를 금전적으로 평가해 금액을 배상해주는 본질적 기능 외에 불법행위를 ‘예방’하는 기능과 가해자를 ‘제재’하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위자료의 예방, 제재 기능을 배제하다보니 전반적으로 위자료가 낮게 책정돼 왔다는 것이다. 이창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자료 산정 기준이 고착화되다보니 위자료가 하향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방, 제재 기능의 관점에서 위자료를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희롱 가해자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보다 성희롱을 방치한 사용자가 지급해야 할 위자료를 더 높게 책정한 전향적인 판결도 있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은 성희롱 사건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무원 ㄷ씨의 남편이 서울시와 성희롱 가해자 3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성희롱 가해자들에게는 970만원을 배상하라고 하는 한편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등 재발 방지대책을 제대로 취하지 않은 서울시에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열린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심포지엄에서 이혜미 수원지법 판사는 “직장 내 성희롱과 사업주의 의무 위반이 발생하는 경우 성희롱 피해 근로자 등이 근로환경 악화 등 근로관계에서 직접적이고 중대한 피해를 겪게 된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참작해 실질적 피해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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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han.kr
June 29, 2020 at 10:2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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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회사 책임에 관대한 법원[플랫]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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