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진출한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기업경영 내용이 외부에 공시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주식회사나 유한회사였던 법인 형태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부터 유한회사의 외부감사 및 기업공시를 의무화함에 따라 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여서 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의 재개정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외국계 투자기업들은 해외 본사로 빠져나가는 배당금과 로열티 등의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려 공시의무가 없는 유한회사 형태를 유지해 왔다. 금융당국은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해 유한회사도 외부감사와 공시의무를 부여하도록 2018년 6월 외감법을 개정했다.
2020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유한회사가 외부감사를 받게 되자 이베이코리아와 딜리버리 히어로코리아가 지난해 연말 외감법 법망을 피하기 위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이에 앞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아디다스코리아는 외감법이 개정되기 전에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형태를 바꿔뒀다.
그동안 외국계 투자기업은 국내 진출 초기 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해 오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유한회사로 전환해 외부감사와 공시를 회피한 사례가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었다. 외감법이 개정되자마자 이제는 유한책임회사라는 빈틈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매출 1조원을 초과하는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경영 내용의 공시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이베이코리아, 작년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
5조원 매각설이 나도는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2019년 12월 24일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2020년부터 외부감사와 공시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는 2018년 감사보고서가 마지막 공시가 됐다.
하물며 2019년 12월 23일까지 주식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2019 회계연도의 감사보고서 공시도 하지 않았다. 회계연도 결산 공시기한인 다음연도 3월 말에 이미 주식회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 이후에는 공시의무가 없어진다”며 “주식회사라는 실체가 없어졌는데 공시하라고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이런 경우) 공시하라는 법이 없으며 기업에 불리하게 해석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DH코리아, '배달의 민족' 인수하면서 유한회사서 유한책임회사로
독일에 모기업을 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코리아)는 2011년 11월 18일 국내 유한회사로 설립됐다. 하지만 2020년부터 유한회사도 외부감사 및 공시 대상이 되자 2019년 11월 19일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변경한지 며칠 후인 12월 24일에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또다시 외부감사와 공시를 피하게 됐다.
한편 DH코리아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도중인 2019년 12월 13일 국내 배달앱 시장 1위인 '배달의민족(주식회사 우아한형제들)'을 4조8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배달앱 시장 2위, 3위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는 DH코리아는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면서 국내 배달앱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 인수 승인이 나면 주식회사인 우아한형제들도 유한책임회사에 합병 또는 전환할지 관심이다.
아디다스, 월트디즈니는 외감법 개정 전 '유한책임회사'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와 아디다스코리아는 외감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이던 2016년과 2017년에 주식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미리 전환한 기업이다. 외감법 대상에 유한회사는 포함되고 유한책임회사는 제외될 것이라는 것을 사전에 예감한 듯한 절묘한 선택이다.
브랜드 '아디다스'로 국내에서 연 1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는 아디다스코리아는 2016회계연도 감사보고서 공시가 마지막이 되었다. 이 회사 2016년 매출이 이미 1조원이며 로열티 940억원, 국제마케팅비 400억원을 모회사 송금했으며 배당성향 140.1%에 이르는 1500억원을 배당했다. 이 회사도 2017년 이후 깜깜이 외국계 투자기업이 되었다.
월트디즈니는 2016년 10월 28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되기 전 회계연도인 2016년 9월 30일(2015.10.01.~2016.09.30.) 감사보고서가 마지막 공시자료가 됐다. 이 회계연도 영업수익(수수료 수익)은 1897억원이며 이 중 62.7%에 이르는 1190억원을 로열티로 송금했다. 각 캐릭터 매출액의 40~70%를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다. 같은 해 배당금도 207억원으로 배당성향은 152.5%이다.
2018년 외감법 개정 전에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해 외부감사와 기업 공시를 피해간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들 기업은 국내 진출 초기에는 주식회사를 설립해 운영했으나 매출 등 기업 규모가 커지고 로열티나 배당금 규모가 늘어나면서 외부감사나 공시를 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조세일보가 조사한 외국계 투자기업 중에는 우리 눈과 귀에 익은 규모가 큰 기업들이 다수 있다. 루이비통, 샤넬, 엘오케이(로레알코리아), 애플코리아, 한국오라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휴렛팩커드, 프라다코리아 등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최고급 외제 브랜드로 입지를 굳힌 핸드백·화장품·패션 기업과 첨단산업인 IT·소프트웨어 기업들이다. 이들 회사 중에서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게 된다면 이를 방지할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1997년 이후 한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초기부터 유한회사 형태로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구글코리아, 나이키코리아, 에르메스코리아, 이케아코리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기업도 올해부터 외부감사와 공시 대상이 됐다. 이들 기업이 한국에서 얼마나 벌어 본국(본사)로 송금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기업이었다. 올해부터 이들 기업의 영업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도중에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법 개정 외는 달리 방법이 없다.
외부감사 및 기업공시를 회피하는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조세 측면에서 동일 업종의 국내 기업과 역차별 이슈도 떠오르고 있다. 기업 지분을 조세회피 지역으로 옮겨 배당과 로열티 등에 부과되는 세금에서 국내 기업과 역차별을 낳고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외투기업들은 또 관대한 회계기준을 활용해 해외 본사에 과다한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해도 사회적 감시를 받지 않아 조세회피가 상대적으로 쉬운 여건이 조성됐다.
게다가 엄청난 영업이익을 올리는 캐시카우 업종이라는 것을 감출 수 있어 국내 기업의 경쟁 참여를 간접적으로 막을 수 있는 이점도 누려왔다. 본국에서는 주식회사 등 형태로 공개되는 회사가 한국에 진출하면 유한회사 또는 유한책임회사라는 베일 속으로 숨어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외투기업들이 외부감사나 공시를 피하면서 국내 기업과 회계비용 역차별도 일으키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들은 KIFRS 적용으로 회계감사 비용도 큰 폭으로 올라 기업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규모가 있는 국내 토종기업들은 유한회사 등으로 전환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외부감사와 공시를 회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나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면 사회적으로 매도돼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회계 전문가들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의 유한회사 또는 유한책임회사 등기(또는 전환)는 외부감사와 공시를 피하기 위한 오랜 관행이었다”며 “외국계 기업에 대한 허술한 법령을 바꾸어야 할 시기며 외감법을 준수하는 국내 동종 기업과의 역차별도 시정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July 13, 2020 at 06: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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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외감법 허점 노려 '유한책임회사'로 전환 '봇물' - 조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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