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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러더스
딕 풀드 회장의 독선과 과욕이 화 불러
위험관리 최고책임자는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
사모펀드 대량 판매한 국내 금융회사들도
수수료 수입 극대화에 매몰돼 위험관리 홀대한 게 화근
주요 금융지주 전직 고위임원
“최고경영진의 수수료 수입 확대 요구에 임직원들 스트레스 받아,
결국 수수료 수입 늘리고자 리스크 있어도 판매해”
금융감독당국 고위관계자
“내부 견제장치가 있어도 중요한 건 조직문화,
회장과 행장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관건”
지난 6월3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리스크 관리의 여왕) 매들린 앤톤식은 리먼브러더스의 전체적인 리스크 성향을 결정하는 위험관리 최고책임자였다. 앤톤식은 리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임원위원회에서 위험과 관련한 긴박한 사안들이 발표될 때마다 회의실을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었다……위험관리 담당자들과 함께 위험관리 최고책임자도 회의실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딕 풀드(리먼브러더스 회장)와 조 그레고리(사장)의 변함없는 요구였다. 기본적으로 딕과 조가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이익에 관련된 얘기였다. 그들은 앤톤식의 생각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새로운 수십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눈앞에 두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험관리의 천재에게 회의실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가장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리처드 왕(딕 풀드 회장을 빗댄 표현)은 리먼의 이사회를 비중이 낮은 회의체로 변질시켜 놓았다. 이사회는 그의 결정을 무턱대고 찬성을 하고 후한 사례금을 받는 또다른 집단이었다. 이사회는 현대의 거친 시장에 대한 의미있고 명료한 지혜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딕의 투자계획을 인정해주고 왕의 결정을 승낙해주기 위해 존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촉발제가 됐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이 투자은행의 고위급 간부를 지냈던 로렌스 맥도날드의 자서전 <상식의 실패>에 나오는 대목들이다. 저자는 리먼브러더스가 딕 풀드 회장의 독선과 아집으로 운영됐고, 그에 대한 견제장치는 작동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이사회를 자기에게 충성할 만한 사람들로 채워놓고,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을 할 때는 리스크 관리 책임자를 방에서 나가도록 했다. 딕 풀드 회장은 2006년 9월 위험관리 최고책임자인 앤톤식을 임원회의에서 영구적으로 추방하고 아예 한직으로 발령내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8년 9월 그 자신도 리먼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리먼의 사례는 탐욕에 눈이 멀어 리스크 관리를 내팽개친 금융회사의 행위가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금융회사들의 이런 행태들은 정도와 규모는 다를 수 있겠지만 최근 3~4년간 급성장했던 국내 사모펀드 시장에서도 벌어졌다. 국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F), 라임자산운용, 옵티머스자산운용 등의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상당수 국내 금융회사들도 이런 실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내 은행들의 ‘리스크 불감증’은 디엘에프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올해 3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공개한 조정결정서를 보면, 우리은행은 은행경영계획에서 자산관리 수수료수익 목표치를 2017년 990억원에서 2018년 1950억원으로 97%나 높였고, 2019년에는 2344억원으로 20.2% 상향 조정했다. 이 은행의 자산관리(WM)그룹은 지난해 1월 영업전략추진회의에서 전 직원이 PB고객과 금융수신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영업점성과지표(KPI)에서 PB고객수를 30점에서 50점으로, PB고객의 펀드 포함 수신 증가액을 30점에서 70점으로 각각 배점을 확대하고, 영업점성과지표를 영업본부장이 매일 관리하도록 했다. 이어 다음달인 2월엔 확대영업본부장 회의에서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 고수익펀드 신상품 3종(디엘에프, 라임무역금융, 스코틀랜드 부동산펀드)을 출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 상품의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할 경우 거부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게 화근이 됐다. 우리은행은 WM부서가 고난도 상품을 새로 출시하면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와 ‘상품선정위원회’를 거치게 돼 있다. 공정가액실무협의회에서 실무자들이 상품의 리스크와 수익률 등을 분석해 상품이 적절하게 설계됐는지 검증하고 여기를 통과하면 상품선정위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리스크 관리의 기본적인 조직 체계는 갖춰져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정가액실무협의회는 독일 국채금리가 -0.7%로 하락하면 원금 100% 손실이 발생하며 금리 하락으로 장기펀드는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200배에 이르는 높은 레버리지로 인한 원금 100% 손실 가능가능성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수정 통과시켰다. 이어 서면결의로 진행된 상품선정위원회는 일부 위원들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하자 찬성의견으로 임의 기재하고, 구두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상품담당자와 친분있는 직원으로 교체한 뒤 찬성의견을 받아 최종적으로 전원찬성으로 가결했다. 사실상 견제 장치의 나사가 풀린 셈이다. 이에 앞서 하나은행은 2016년 5월 미국 이자율 스와프(CMS) 지수(5년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디엘에프를 처음 출시했다. 당시 이 상품은 소비자보호부 등 관련부서 협의와 상임감사위원을 거쳐 본부장 결재로 상품위원회에 부의됐고, 상품위원회는 별다른 이견없이 판매를 승인했다. 그런데 내부결재 문서에는 ‘세일즈 포인트’로 이 상품을 ‘원금손실 가능성이 낮은 확정금리형 펀드’로 규정한 뒤, ‘예금형 선호 고객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으며 핵심상품으로 은행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나은행 투자상품부가 제작한 직원 교육자료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낮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고위험 상품을 설계해 판매할 때는 예외적인 상황도 고려하는 게 당연한데도 금융위기 같은 상황을 시나리오에서 아예 배제했다는 얘기다. 하나은행은 이후에도 만기·금리체계·수수료 등 새로운 거래조건의 영·미 CMS 금리 연계 상품을 다수 출시했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 변경’이 아니라며 아예 리스크·설명자료·직원교육체계·소비자보호 적정성 등에 대한 상품위원회의 심사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판매를 했다. 금융소비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고난도 금융상품을 팔면서 이렇게 위험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최종 손해는 고객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이런 행태가 벌어지는 것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의 철학과 이에 따른 형성된 조직문화가 배경에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내부 견제장치가 있어도 중요한 건 조직문화다. 회장과 행장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최고경영진이 ‘돌격 앞으로’를 하면 밑에서 이에 반대할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금융감독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의 고위 임원을 지냈던 한 인사의 최근 <한겨레>와 만나 금융지주사의 경영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회사 경영에서 가장 문제가 뭐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이익의 70~80%를 예대마진에 의존한다. 그런데 전년보다 똑같거나 많은 수입을 내려면 굉장히 어렵다. 예대마진을 늘리기는 어렵고 그래서 수수료 수입을 늘리려고 한다. 지주사 회장, 은행장 같은 이들은 계속 수수료 수입 올리라고 한다. 그래서 아래 임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것을 다 구두로 지시한다. 그래서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리스크가 있어라도 판매를 하는 거다. 디엘에프 사건으로 문제가 드러나긴 했지만 사건만 안 터지면 판매수수료는 알토란 같은 거다.” 이 전직 고위임원은 결국 금융회사 최고경영자가 영업 강화만 외칠 게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사모펀드 대규모 손실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리스크 관리를 비교적 잘 하는 금융사도 있었다. 최고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강화 기조 속에서 디엘에프와 같은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걸러낸 금융회사로는 KB국민은행이 꼽힌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환매중단된 사모펀드 사태에서 비켜나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에도 디엘에프 상품을 팔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국채 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을 보고, 실무자 선에서 걸러낸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각 은행들은 하드웨어는 비슷하게 마련돼 있다. 결국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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